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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0804 - 여름학기 종강을 일주일 앞두고

미키곰 2015. 8. 4. 19:01


사실 다음 주가 종강이긴 하지만, 종강하고 나면 나는 귀국이 아니라 라스베가스로 이동해야 한다. 조금 여기서 느낀 점이나 든 생각들을 휘갈겨둘 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써본다. 때는 이런 것을 쓸 시간도 없을 것 같고.


1. 나는 역시 연성과학보다는 경성과학 쪽이 더 잘 맞다. 딱히 지금 듣고 있는 화학이 양자역학보다 말랑하다는 게 아니라, 양자역학에서 사용하는 전제들이나 수학적 도구들을 받아들이는데 크게 거부감이 없다는 것에 좀 스스로 놀랐다는 거다. 그렇다고 물리가 하고 싶어질 정도는 아니고, 다만 방법론적인 것에서 좀 더 응용수학적인 틀을 사용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는 정도.

2. 화학하고는 도저히 친해지지 못할 것 같다. 특히 교수가 가르치라는 화학은 안 가르치고, 분석화학이나 전기화학 책을 스캔해서 던져주고 그걸로 진도를 나가는 바람에 태반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의 외워서 시험을 쳤다. 화학과 안 그래도 친하지 않았는데, 덕분에 이번 계기로 더욱 친해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. 물론 화공 쪽은 별개다. 틈틈히 이동현상 책을 봤는데, 나름 그건 나쁘지 않았던 듯.

3. 영어 점수와 실제 커뮤니케이션 능력(특히 회화 부분)은 어느 수준 이상에선 하등 관계가 없다. 토플 110 찍어도 말 못할 사람은 말 못하고, 90이어도 말 잘 할 사람은 잘하더라. 물론 110이라는 점수가 어느 정도 보장을 해주는 수준이라는 게 있지만, 그 보장을 해주는 영역에는 면 대 면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포함되지 않는다.

4. 아무리 영어를 열심히 해도, 영어권 거주 경력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못 따라간다. 하지만 절대로 못 따라간다고, 안 따라가면 그것도 나름 심히 난감해지므로 영어는 역시 지속적으로 노오오오력해야하는 대상이다.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건 역시 노오오오력이 부족한 탓이 틀림없다.

5. 대학과 학계의 시스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. 이곳의 학생들이 국내 대학들의 신입생들보다 특출나게 뛰어난 건 절대로 아니다. 그러면 '학술적인 성과의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걸까'에 대해 생각해보았다. 대학이 일종의 블랙박스라고 치면, 대학에 투여되는 (별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다만) '인적 자원'은 인풋 중 하나일 것이다. 하지만 아웃풋이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면, 역시 사람보다는 시스템이 중요한 거 아닐까?

6. 대학원 유학을 가고 싶은 마음은 오히려 줄었다. 등록금이나 생활비 계산해보니까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더라. 정말 외국에서만 할 수 있는 분야나 들어가고 싶은 랩이 있는 것이 아니면, 투자 대비 리턴은 오히려 절망적인 수준이다. 아, 물론 펀딩을 빵빵하게 받을 수 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긴 하지만 별로 그럴 수 있을 것 같진 않기 때문에. 두 달 간의 생활은 분명히 즐거웠지만, 어느 정도는 놀러다니면서 공부한다는 기분으로 있던 거기 때문에 그랬던 거고, 여기서 몇 년을 공부한다고 하면 그 즐거움은 유지될 수 없을테니.

7. 중국인이 정말 많다. 여기에 오는 중국인들은 자국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부잣집 자제들일까.

8. 내가 받는 혜택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함을. 여기는 내 학교 학생 말고도 수많은 한국 학생들이 있다. 그런데, 그들과 여름학기 비용 얘기를 하면 정말 엄청나게 부러워하더라. 내가, 그리고 내가 속한 대학 집단에서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대한 타 집단의 반응을 보고나니 확실히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질 필요는 있다고 느꼈다.

9. 내 대학 구성원들에 대해서 실망도 했고, 감탄도 했다.

10. 미국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이 있지만, 이는 생략. 구구절절하기도 하고, 간단하게 쓰기에는 양이 많으므로.

일단 이 정도로 쓰고 차후에 생각나는 게 더 있으면 추가하거나 수정하는 걸로.